관계는 GIVE&TAKE다.
그걸 인정하면 싸울 일이 없다.
애인은 그림 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마주앉아 컴퓨터를 한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짓을 하면서 간간이 이야기를 주고 받고 킬킬대다가 밤이 늦으면 이제 그만 꿈나라로 가자며 침실로 들어서는 일상의 반복. 낮에는 집앞 카페에 나와 백수 생활을 만끽하며 라떼 한 잔 시켜놓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백수생활 3개월이 넘어가니, 이젠 뭔가 일을 조금씩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쬐끔 오른 주식을 냉큼 팔아버리자 더 오르는 주식을 보며 씁쓸하게 웃어도 보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신형 노트북을 구입할까 고민도 하고. 웬지 그 노트북을 사면 생활에 좀더 활력이 붙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도 보고. 종종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도 넣고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 나 잘 살고 있다고 연락도 해보고. 야근에 지쳐 돌아오는 애인 얼굴 보면 안타까워 안절부절하기도 하고. 얼마 전 애인으로부터 넘겨받은 가계부를 밤마다 정리하면서 나름 재정관리라는 중책을 맡은 기분을 만끽하기도 하고. 최근 기분이 안 좋으면 눈물부터 흐르는 나를 어떻게든 달래보려 노래를 불러주는 애인 목소리에 더 울어버리고. 뭐 이런 소소한 일상에 젖어 오늘도 우유 가득한 라떼 한 사발 마시고 쿠폰 하나 받아들었다.
"그러니까 그 왜 있잖아, 섹스 말고 그냥 토킹 어바웃 진지하게 할 수 있고 가끔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하는 그런 관계. 그런 여자친구쯤 하나 가져도 되는 거잖아."
애인이 말했다. 그런 이성 친구 누가 만들지 말라고 했는가. 다만 굳이 그걸 나에게 일일이 털어놓아 빈정 상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그 말을 들은 후로 애인이 괜스레 밉고 짜증난다. 묻고 싶다.
"입장 바꿔봐. 내가 직접적으로 그대에게 가끔 영화나 보고 차도 마실 수 있고 진지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남자친구 하나 만들어도 될까 하고 물으면 기분이 어떨까." 덧붙여 묻고 싶은 말 "섹스만 안 하면 다냐."
내가 물으니 "그건 좀 그렇네"라고 대답하는 애인.
얼마 전 지인들과 술자리에 동석한 우리 커플. 뉴페이스 모델 필 나는 여자 하나 등장했는데, 애인이 그 여자에게 넙죽 자신의 명함을 건내더니 소개팅 필요하면 연락하란다. 그렇게 예쁜 여자한테 명함까지 줘가며 소개팅을 시켜주려는 선심 따위는 개한테나 줘라는 심정이었지.
나는 이제 그대에게 기본적인 관심만 가져주고 내 생활에 파묻혀 지낼 작정이다. 그대가 누굴 만나건 어떤 생활을 하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쿨하게.
이건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줄 것만 같은 믿음을 남자들에게 심어주는. 나중에 뒷북 치는 게 내 패턴. 그냥 이번에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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